[복사본] 인테리어뉴스

한예종 9대 총장으로 4년 임기를 마치고 한예종 피아노과 교수로 돌아온 김대진 전 총장. 사진=문덕관 실장


서울 서초동 우면산 자락에 위치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초 캠퍼스. 예술의전당과 국립국악원이 이웃한 이곳엔 미래의 예술가들이 모여든다. 건물의 4층 복도 끝, 피아노과 강의실이 모여 있는 공간. 이곳에 9월 새로 부임한 윤홍천 교수가 자리를 잡았고, 맞은편 끝방에는 불과 보름 전까지 한예종 9대 총장이었던 김대진 교수(63)의 강의실이 있다. 석관동 총장실을 떠나 다시 교수, 음악가로 돌아온 그를 지난 9월 8일 만났다.
402호 문을 열고 들어서니 중앙에 2대의 스테인웨이 피아노, 창가에는 티 테이블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쪽 벽 마이크레딧 6등급 면에는 아담한 책상, 나머지 벽면을 채운 우드 수납장에는 피아노 악보들이 빼곡했다. 대부분 오랜 세월을 거쳐 손때 묻고 빛바랜 악보들이다. 그중에서도 쨍한 주황색의 프로코피예프 발레곡 ‘로미오와 줄리엣’ 악보가 눈에 띄었고, 그 옆엔 아마도 학생들이 가장 많이 연습했을 모차르트, 베토벤의 악보들이 꽂혀 있었다. 김선욱, 손열음, 문지영, 박재홍 등 걸출한  휴대폰 연체 음악가들을 키워낸 ‘스승’ 김대진의 방이다.
벽면 한쪽에는 수많은 감사패와 감사카드, 미니어처 피아노 장식품으로 가득했다. 피아니스트 김대진의 존 필드 녹턴 전곡 앨범 표지도 큰 액자로 걸려 있었다. 피아니스트의 방이 분명했다. 동시에 ‘호랑이 선생’으로 유명한 그가 제자들과 치열한 시간을 보냈을 곳. 미래의 피아니스트들이 울고 웃고 좌절 보호된운영체제파일 하고 환호한, 담금질의 공간. 그렇게 10평 남짓의 작은 강의실에는 30여 년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역사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총장 4년 임기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어느덧 환갑을 훌쩍 넘겼지만 반짝이는 눈빛과 또렷한 목소리는 그대로였다.



한예종 피아노과 교수로 돌아온 김대 근로기준법 연차휴가 진 전 총장의 강의실. 사진=문덕관 실장






한예종 피아노과 교수로 돌아온 김대진 전 총장의 강의실 모습. 사진=문덕관 실장



Part 1. 은행담보대출금리 다시 돌아온 강의실에서
1994년 9월, 그는 한예종 피아노과 교수로 부임했다. 줄리어드 음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마친 후 1986년 뉴욕에서 데뷔했을 때, 뉴욕타임스는 그를 “훌륭한 기교와 음악적 지성을 갖춘 신예”라고 호평했다. 피아니스트로서 화려한 경력을 쌓던 중, 스승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계기로 그는 교육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후 30년 가까이 피아니스트를 길러냈다. 1994년 부임 이후 영재교육원장, 음악원장을 역임했고, 동시에 자신의 음악을 펼치는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로도 활동했다. 2021년 9월에는 한예종 역사상 최초 전 구성원이 참여한 총장 직선제를 실시했고, 그는 총장이 되었다. 4년 임기를 마치고 9월부터 다시 강의실로 돌아왔다.
그의 하루는 피아노 연습으로 시작한다. 인터뷰 당일도 방문을 열고 들어와 곧바로 피아노부터 쳤다고 했다. 그래야 커피 한잔이라도 편하게 마실 수 있다고. “8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잖아요. 지금도 피아노가 있으면 연습을 해야 할 것 같아요.(웃음) 50년이 지나도 그래요. 강의실 문 열고 들어와서 피아노가 보이면 앉아서 연습부터 하죠.”
총장 퇴임 후 강의실로 돌아온 소감에 대해 그는 “퇴임했지만, 여전히 머릿속에 실타래가 얽혀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총장으로 살던 시기의 루틴이 아직 남아 있어요. 노트북을 열고 결제창을 띄운다든지, 엘리베이터 버튼을 습관적으로 ‘4’를 누르는 식이죠.” 그는 “4년간 완성하지 못한 일이 많다.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고 외적 요인, 사회적 변동도 있었기 때문”이라며 아쉬움이 크다고도 했다. 행정가로 살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결정’이었다. “제 성향이 여러 경우의 수를 다 따져보는 타입이라, 결정 스트레스가 컸어요. 무엇보다 (음악) 현장이 제일 좋다는 걸 다시 절감했습니다.”
총장 시절 그는 ‘경험’을 강조했다. “음악원뿐 아니라 영상원, 무용원, 연극원과 6개월 단위로 협업하는 구조를 만들고 싶었어요. 함께 공연도 했죠. 완성하지 못해 아쉽지만 방향은 분명했어요. 학교는 경험의 플랫폼이 돼야 합니다.”
Part 2. '호랑이 선생' 김대진의 변화
이제 그는 이곳에서 학생들과 1:1 레슨을 진행한다. 4년 전 갑자기 총장이 되면서 헤어졌던 제자들과 다시 만난다. 비록 같은 학생들은 아니지만 그는 “강의실로 돌아온 건, 100% 학생들 때문”이라고 했다. “보통 총장 퇴임 후 연구년을 갑니다. 저도 몸보다 정신을 쉬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하지만 학생들 때문에 이곳으로 돌아왔죠.”
한예종 학생들은 김대진 피아니스트와 같은 특정 교수의 가르침을 받겠다는 목적을 갖고 입학한다. 학교를 선택하는 기준이 교수 때문이라고 봐도 된다. 그런 그가 총장이 되었을 때, 학생들에겐 큰 충격이었다. “그때 콩쿠르를 준비하던 학생도 있었고요. 일일이 만나 설명하고 다른 선생님들과 연결해줬지만 마음 한편은 무거웠습니다.”



한예종 피아노과 교수로 돌아온 김대진 전 총장. 사진=문덕관 실장


다시 돌아온 그는 좀 더 느긋해졌다. 교육 철학도 시대 흐름에 맞춰 변화했다. 과거에 왜 그렇게까지 성과 지향적인 교육을 했나 때론 후회한다고도 했다. “지나치게 성과 지향으로 몰아갔나 하는 자성도 있었어요. 과거엔 빠른 성과를 위해 반복 교정 중심의 교육을 했어요. 효과는 있었지만, ‘정말 잘 가르친 걸까’ 하는 회의가 들었죠.”
그의 교육 방식은 제자들의 ‘약점’을 보완하는 데 집중돼 있었다. “저의 교육은 장점을 키워주기보단 단점, 결핍을 채워주는 것을 중시했습니다. 피아니스트는 일정 나이가 지나면 단점이 잘 개선되지 않거든요. 대학 시절 전후로 거의 완성된 틀이 잡힌다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없는 것을 채우는 레슨을 집요하게 했습니다.” 
그 덕에 김대진을 거쳐간 제자들은 세계 유수의 피아노 콩쿠르에서 줄줄이 입상했다. 그가 총장 취임하기 직전까지 가르쳤던 박재홍이 한예종 4학년 재학 시 2021년 부조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역시 그의 제자인 문지영이 2015년 같은 콩쿠르 우승자였다. 부조니 콩쿠르는 1위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콩쿠르다. 제자 손열음이 순수 국내파로 비오티 국제콩쿠르 1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한예종 1대 총장이자 음악학자인 故 이강숙 총장은 “손열음은 한예종 김대진 교수에게 배웠다. 순수 국내파로 국제 콩쿠르 1등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울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김선욱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역시 그의 제자다. 국내파 피아니스트들에게 김대진 교수는 일종의 ‘일타 강사’였다.
Part 3. 개성보다 중요한 기본기, 임윤찬 신드롬
하지만 그는 성과보다 ‘기본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음악은 올림픽 메달이 아닙니다. 기본기가 없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무너져요.”개성이나 창의성도 기본기가 갖춰진 틀 안에서 표출되어야 진짜라고 본다. “모차르트의 곡에서 나오는 포르테와 차이콥스키의 포르테는 근본이 다릅니다. 자기 소리를 내겠다고 모차르트에 강한 포르테를 쓰면, 그건 개성이 아니라 아류가 됩니다. 시대의 양식과 사고방식, 곡의 배경을 인문학적으로 이해하고 연주해야 하죠. 머리로 배운 것이 자기화돼야 진짜 개성이 나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임윤찬은 대표적인 개성파 피아니스트다. “윤찬이는 특출나요. 미친 듯이 연주하지만 그 시기로 돌아갑니다. 모차르트 곡을 칠 땐, 모차르트가 살았던 시기로 들어가는 거죠. 그건 재능이에요. 본인이 워낙 독서를 좋아하고 배우는 것에 관심이 많아서 효과가 배가 된 측면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배워서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말하는 임윤찬은 여타 음악 영재와는 많이 달랐다. 어려서 두각을 나타내기보단, 점차 내면의 화학작용과 피아노가 만나 꽃을 피운 경우다. 독서나 사유, 예술 간 융합이 그의 연주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 “연주는 결국 무의식의 표현입니다. 그의 인문학적인 내면의 요소가 예술과 융합해 몸으로, 소리로 자기화되어 나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적으로 말이죠. 그건 진짜 개성이죠.”
임윤찬은 한예종 영재교육원 시절부터 손민수 교수를 사사했다. 지금은 미국 뉴잉글랜드 음악원에 둥지를 튼 손민수 교수 역시 한예종에서 김대진 교수에게 배웠다.



한예종 피아노과 교수로 돌아온 김대진 전 총장. 사진=문덕관 실장


김대진은 그동안 “생긴 대로 친다”는 지론을 강조해왔다. 문지영은 그를 닮은 순수한 소리를 낸다. 손열음은 즉흥 연주에 강하고 순발력과 표현력이 뛰어나다. 하지만 그 예상을 벗어난 게 임윤찬이었다. “전통적 영재는 어릴 때부터 두각을 드러냈죠. 하지만 어떤 영재는 잠복기를 거칩니다. 시대 감각, 독서, 탐구심과 만나 어느 순간 폭발하기도 해요.”
세계 유수 국제 콩쿠르에서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면서, 그의 교육 철학도 점차 바뀌었다. 과거 ‘가지치기’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틀 안에서 개성을 중시한다. “세상과 음악계가 크게 달라졌습니다. 과거엔 튀어나온 걸 정리했다면 지금은 살릴 건 살리되 틀을 함께 가르칩니다. 다만 독특한 모습이 꼭 개성은 아닙니다.”
그는 심사위원으로 “자기 소리를 가진 피아니스트”를 선별한다고 했다. “똑같은 피아노라도 사람이 바뀌면 소리가 달라요. 건반이 그 사람의 영혼을 느끼고 반응하는 겁니다.”
단지 튀는 연주, 흉내 낸 개성은 걸러낸다. 진짜는 기본 테크닉 위에 음악을 이해하는 깊이, 그리고 그걸 무대 위에서 구현하는 힘이다. “머리로 이해한 것을 피아노를 통해 내보내는 것까지 되어야 하죠. 이해는 다 했는데 무대에만 올라가면 안 되는 친구들이 있어요. 멘탈, 체력, 집중력. 그게 연주력이에요.” 요즘 콩쿠르 현장에서 나타나는 ‘과잉 개성’ 현상도 우려한다. “진짜와 따라 하기는 많이 다릅니다.”
Part 4. 사회의 어른이자, 예술가로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연주자보다 선생에 가깝다고 정의한다. 교육자로서, 총장으로서, 그는 늘 ‘사람을 만드는 일’에 집중해왔다. 자연스럽게 예술의 사회적 역할도 중요하게 본다. “음악의 사회적 역할은 소통과 연대입니다. 클래식은 자기들만의 리그라는 지적도 맞아요. 그래서 저변을 넓히는 무대가 필요합니다. 유럽에선 동네 교회에서 5유로짜리 연주회가 수시로 열리죠. 우리도 동네 교회, 구민회관 같은 공간에서도 연주가 이뤄져야 해요. 예술의전당만이 무대는 아닙니다.”
앞으로 그는 유럽 4개국 대사관 개관 기념 연주회를 갈 예정이다. 국내에선 지방 교향악단과 객원 연주 등을 앞두고 있다. 그는 이제 학생들에게도 자신에게도 좀 더 여유를 더할 계획이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린 한국형 예술가의 삶을 좀 더 예술적으로 채우겠다는 것.
“백건우 선생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참 부럽습니다. 연습하다 쉬고, 영감을 얻으려고 여행도 가고, 특별한 요리도 즐기고요. 예술가의 루틴이 체질처럼 몸에 배어 있는 거죠. 길을 걷다 나무 한 그루를 보고도 ‘특별하지 않냐’며 걸음을 멈추고 느끼십니다. 저는 늘 가르치는 일에 매달려왔으니, 조금은 다른 삶이었죠.”



한예종 피아노과 교수로 돌아온 김대진 전 총장. 사진=문덕관 실장


Part 5. 마지막 제자들, 미래의 피아니스트들에게 
한예종에서 퇴임까지 남은 2년간, 마지막 학생들을 향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차 있다. “학생들과 함께 B.M.S. 원칙을 세웠습니다. 몸(Body), 마음(Mind), 영혼(Soul). 건강해야 결정을 잘하죠. 마음은 창조 의지이고, 영혼은 연주에서 드러납니다.”
그는 오늘날 젊은 예술가들이 ‘지속가능한 연주자’로 성장하기 어렵다는 현실에도 우려를 표했다. “콩쿠르 입상 이후 소속사에서 예술가를 ‘빚는’ 것이 아니라, 마치 빠르게 ‘소비’해버리는 것 같아요. 연주 기회가 많은 건 좋지만, 너무 많은 소비는 예술가의 영혼을 고갈시킬 수 있습니다.”
그는 제자인 김선욱이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한 외국 에이전시 관계자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고 회상했다. “‘1년에 한 번은 김선욱의 연주를 직접 들어주세요’라고 하더군요. 그건 진짜 음악가를 만들기 위한 배려였어요. 제게 그 말이 오래 남아 있습니다.”
끝으로 미래의 음악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뭘까. 그는 기본기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콩쿠르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기본기와 소리, 그 위에 자신만의 음악을 쌓아야 해요. 콩쿠르로 증명하려 하지 마세요. 진짜 예술은 그 다음입니다.”
조민선 기자 sw75j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