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게임사이트 다양한 테마 속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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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스타일을 찾아 떠나는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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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트렌드와 인기 릴게임 추천
최근 릴게임 트렌드는 단순히 화려한 그래픽을 넘어, 스토리텔링과 혁신적인 게임 플레이 메커니즘을 결합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고품질 그래픽과 흥미진진한 사운드는 기본이며, 플레이어가 직접 게임의 진행 방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들이 추가되면서 몰입감을 한층 더 높이고 있습니다. 인기 릴게임들은 종종 예측 불가능한 특별 보너스 라운드나 프로그레시브 잭팟 시스템을 통해 플레이어에게 엄청난 기대를 안겨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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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slotnara.info
물리학자 조지 스무트(George Smoot)는 미 항공우주국(NASA) 코비위성 프로젝트에 참여해 1992년 우주배경복사의 미세한 온도 차이-밀도 차이를 관측함으로써 빅뱅 이후 별과 은하가 만들어지게 된 조건을 처음 확인, 우주배경복사의 흑체복사 스펙트럼 등치성을 입증한 나사 과학자 존 매더와 함께 2006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하지만 스무트는 코비 프로젝트 성과 발표 등 몇몇 과정에서 절차를 무시한 채 자신의 공로를 과도하게 부각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news.berkeley.edu, 가족 사진
손오공릴게임예시빅뱅 직후 우주는 조그맣게 응집된 고밀도 초고온 플라스마 덩어리였다. 너무 뜨거워서 수소나 헬륨조차 원자로 뭉칠 수 없고, 빛(광자)도 전하 입자들에 부딪쳐 빠져나오지 못하는 희뿌연 입자들의 우주. 약 38만 년 뒤 그 우주가 팽창하며 식어 비로소 원자들이 만들어졌고, 그제야 자유전자 등의 성글어진 틈 사이로 빛이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바다이야기디시 38만 년이 모자란 138억 년 동안 우주 전역으로 고르게 퍼져나간 태초의 빛의 잔광(마이크로파)이 '우주배경복사(CMB, Cosmic Microwave Background)'다.
약 100년 전(1927년) 벨기에 물리학자 겸 사제 조르주 르메트르가 ‘우주 팽창 가설’로 수천 년 정설이던 ‘정상우주론’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리고 2년 릴게임골드몽 뒤 미국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 우리 주변 은하들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빅뱅을 뒷받침하는 관측 증거를 내놨다. 하지만 빅뱅 우주론은 여전히 ‘가설’이었다. 그 가설은 1964년 아노 펜지아스와 로버트 윌슨이 CMB를 발견하면서 비로소 이론으로 정설화됐다. 우주의 모든 방향에서 거의 균일하게 관측된 그들의 CMB는 빅뱅의 이론적 시나리오를 완벽하게 뒷받침 뽀빠이릴게임 하는 결정적 증거였다.
과학은 스스로 구한 해답에서 늘 새로운 질문을 찾아내는 학문이다. 펜지아스 등이 관측한 것처럼 CMB가 절대온도(2.7K)와 맞먹는 동일한 온도(마이크로파 세기)로 우주 전역에 완벽하고도 균일하게 편재한다면, 어떻게 그 텅 빈 우주에서 지금의 별과 은하, 은하단이 포진한 불균일한 구조가 생겨났을까.
우주전함야마토게임 1989년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이 의회 등을 줄기차게 설득해 어렵사리 쏘아 올린 우주배경탐사선 '코비(COBE)'의 주요 임무 중 하나가 저 의문을 푸는 거였다. 과연 CMB는 조금도 주름진 곳 없이 완벽하게 균일할까. 이른바 CMB의 비등방성(Anisotropy, 온도 요동)을 찾는 거였다.
약 3년 뒤인 1992년 4월, UC버클리 물리학자 조지 스무트(George Smoot)가 미국물리학회 연단에 섰다. 그는 코비 위성에 장착한 초정밀 마이크로파 관측장비(DMR)로 CMB에서 절대온도 대비 약 10만 분의 1도 수준의 온도 차이(온도 요동)를 관측했다고 발표했다. 그 미세한 온도 차이는 초기 우주의 밀도 차이(밀도 요동)를 반영한 것으로, 거기서 비롯된 중력의 차이 덕에 별과 은하와 우주 거대구조가 형성될 수 있었다는 거였다. 우주의 ‘원초적 씨앗(Primordial Seeds)’, 즉 CMB 온도 요동을 발견한 공로로 2006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그가 최근 별세했다. 향년 80세.
2006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 코비 프로젝트 총괄 책임 과학자 존 매더(왼쪽)와 조지 스무트. 코비 프로젝트의 두 주역은 현대 우주론을 정밀 과학의 시대로 이끈 학자로 평가받는다. The Nobel Museum
스무트는 2차대전이 끝나던 해, 플로리다주 미 지질조사국 수문학자 아버지와 과학교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학부(물리학, 수학)와 대학원 과정을 이수했다. 70년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딴 그는 UC버클리에서 천체물리학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빅뱅-우주 탄생의 비밀에 천문학계의 관심이 집중되던 때였다. 동료 학자와 함께 70년대 CMB 관측장비를 개발한 그는 나사가 운용하던 U-2 고고도 정찰기로 대기권 상층부에서 전파 관측 실험을 전개했다. 하지만 CMB의 극도로 미세한 온도 차이를 정밀하게 관측하려면 수증기 등 대기 간섭이 완벽하게 차단된 공간, 즉 CMB 전파 스펙트럼으로 이론적으로 예측된 흑체복사 곡선이 구현되는 공간으로 나가야 했다. 스무트는 70년대 중반 나사에 코비 프로젝트를 제안한 소수의 과학자 중 한 명이었다.
코비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성사시킨 일등공신은 존 매더(John Mather, 1946~)다. 당시는 허블 우주망원경에 과학 예산이 집중되던 때였다. 코비 프로젝트는 1.6억 달러(당시 기준) 예산의 거대 프로젝트인 데다 당시 기술로 CMB 비등방성을 탐지할 수 있을지 불확실했고, 무엇보다 허블이 약속한 미지의 천체 사진들처럼 정치인들이 반기는 스펙터클한 볼거리가 보장된 것도 아니었다. 어렵사리 나사와 의회를 설득해 예산을 따냈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 챌린저 사고(86년)가 터졌다. 우주왕복선에 실어 보내려던 코비 위성도 별도의 델타 로켓으로 발사되도록 더 작고 가볍게 설계를 변경해야 했다. 매더는 예산을 방어하는 일에서부터 위성을 재설계하는 복잡한 과정까지 주도하며 20년 넘게 그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그는 프로젝트 총괄 책임자이자, 핵심 임무 중 하나였던 CMB 흑체 복사 스펙트럼 분석팀 책임 과학자이기도 했다. 흑체 복사란 외부의 모든 전자기 복사(빛과 열 등)를 100% 흡수해 열평형 상태에 이른 완벽하게 검은 이념형 물체, 즉 흑체(black body)가 방출하는 빛의 파장 분포로, 그는 CMB 관측을 통해 초기 우주가 흑체처럼 완벽한 열평형 상태였음을 입증하는 게 그의 팀 임무였다. 매더는 CMB의 에너지 분포 곡선이 절대온도에 해당하는 이른바 흑체 복사 스펙트럼과 오차 범위 내에서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사실, 즉 우주가 초고온 고밀도 상태에서 급격히 팽창하며 냉각됐다는 빅뱅 이론의 서사를 사실상 완결 지었다. 1990년 1월, 그가 미국천문학회에서 코비의 저 관측 결과를 발표하자 참석자 전원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는 2006년 스무트와 함께 노벨상을 공동 수상했다. 스무트가 미국물리학회에서 우주의 ‘원초적 씨앗’이라며 CMB 비등방성 발견 소식을 최초로 공개하기 직전, 그와 UC버클리 연구소는 나사의 공식 발표 절차와 엠바고(보도 통제) 합의를 무시한 채 자신과 연구소의 업적을 중점 부각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물리학회에서 행한 스무트의 발표도 꽤나 선정적이었다. “만일 당신이 종교인이라면, 신(의 얼굴)을 보게 된 셈입니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세계 언론은 그의 업적을 저 멘트와 함께 대서특필했다.
코비 프로젝트는 1,000명이 넘는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장기간 협업한 거대 프로젝트였고, 스무트가 이끈 DMR 팀만 해도 장비 개발 및 운영진을 빼고도 40여 명의 과학자와 데이터 분석가가 활약했다. 하지만 성과 발표장은 한마디로 스무트의 독무대였다. 상당수 코비 과학자는 스무트의 ‘세일즈’를 못마땅해했고, 일부는 그가 다른 과학자들의 공로까지 가로채 개인적 명성을 추구하려 한다며 반발했다. 일부 언론은 코비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였던 매더와 스무트 사이의 공명심 경쟁에서 비롯된 알력인 양 내부적 동요와 갈등 소식을 보도하기도 했다.스무트가 93년 동료 과학자와 공동 집필한 책 ‘시간의 주름: 우주 탄생의 증인’의 내용을 두고도 일부 코비 과학자들은 동의하지 않았고, 매더에게 따로 책을 쓰도록 권유했다. 매더는 3년 뒤 ‘우주 탄생의 새벽을 향한 과학적 여정: 최초의 빛의 진실된 속 이야기’라는 책을 출간했다.
17세기 아이작 뉴턴의 편지로 유명해진 '거인의 어깨 위에 선 난쟁이'란 표현을 형상화한 1410년경 독일에서 그려진 삽화. 저 표현은 과학을 비롯한 거의 모든 지적 진전의 보편적 경로를 일깨우는 상징적 비유로 정착했다. Library of Congress
‘거인의 어깨 위에 선 난쟁이’란 표현은 아이작 뉴턴이 1676년 2월 동료 과학자 로버트 훅(Robert Hooke)에게 쓴 편지 덕에 유명해졌다. 빛의 입자설을 주장하던 뉴턴은 훅의 파동설을 넌지시 무시하며 이렇게 썼다. “제가 더 멀리 볼 수 있었다면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당시 격언 혹은 관용구처럼 쓰이던 저 문구의 출전은 존 오브 솔즈베리(John of Salisbury)라는 12세기 철학자가 남긴 교육서 ‘메탈로기콘(The Metalogicon)’이라 알려져 있다. 저자는 자신의 스승인 프랑스 철학자 베르나르 드 샤르트르가 들려준 말을 책에 인용했다. “(스승이 말하길) 우리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는 난쟁이들과 같다. 우리는 그들보다 더 멀리, 그리고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지만, 그것은 우리의 시력이 뛰어나거나 우리의 키가 크기 때문이 아니라, 거인의 거대한 키가 우리를 높이 올려주었기 때문이다.” 중세 학자인 자신들이 고대 그리스 로마의 지적 유산 위에 있음을 인정하는 저 겸양의 표현은 지적 성취의 보편적 배경을 설명하는 상징적인 문구로 자리 잡았다.
물론 아무나 거인의 어깨 위에 서는 건 아니다. 그래도 동시대의 누군가는 사다리를 챙기고 자신을 무등을 내어줘야 한다. 2차대전 이후의 물리학과 천문학, 특히 이론이 아니라 실험-관측 분야처럼 대규모 인력과 막대한 예산, 거대 첨단 장비들이 필요해진 ‘빅 사이언스’의 시대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뉴턴의 시대와 달리 대표적인 소수만을 ‘천재’로 부각하는 것은 다소 편의적이고, 반지성주의적일 수 있다. 사건이나 현상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맥락을 지우고 단순 명쾌한 해답만을 특권화하는 것은 반지성주의의 주된 특징이자 강점이다. 분야별로 한 해 최대 3명에게만 수여되는 노벨상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연구 책임자 등 소수의 리더가 영광을 독점하고 수많은 과학자와 엔지니어의 실질적 기여가 무시되고 있다는 비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비단 과학계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미국 과학사회학자 로버트 머튼(Robert K. Merton)이 '마태 효과(Matthew Effect)'란 용어로 과학계의 빈익빈 부익부와 승자 독식 현상을 비판한 게 1968년이었다. 마태복음 25장의 한 구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에 빗대 그는 빅사이언스 시대의 과학적 성취가 다양한 분야의 전문화한 수많은 과학자의 협업으로 이뤄지는 반면 공로는 특정 과학자가 독식하는 관행이 이어지면서, 장기적으로 연구 다양성과 연구 환경의 불평등을 심화한다고 비판했다.과학자 개개인의 윤리적 성숙도와 별개로, 위대한 과학적 발견의 공로를 평가-분배하는 것도 오랜 딜레마 중 하나다.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 1953년 노벨상을 받은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여성 과학자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업적을 사실상 도용한 유명한 일화도 있지만, 더 앞서 제임스 채드윅(1935년 노벨상)이 32년 중성자를 발견한 것도 같은 연구소(캐번디시 연구소) 연구원들이 이룬 중요한 초기 실험 성과들 덕이었다. 힉스 입자를 발견한 공로로 피터 힉스와 프랑수아 앙글레르가 2013년 노벨 물리학상을 탔지만, 입자를 실제로 발견한 건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두 거대 실험팀 과학자들이었고, 힉스 메커니즘 관련 논문을 힉스보다 두 달 앞서 발표했던 로버트 브라우트(Robert Brout)는 2011년 숨지는 바람에 노벨상 수상 자격을 잃고 대중적으론 거의 알려지지 못했다. 빠르게 회전하는 중성자별 ‘펄서(pulsar)’를 발견한 앤서니 휴이시는 74년 노벨상을 탔지만, 실제로 그 신호를 처음 포착해 기록한 건 그의 박사과정 여성 과학자(Jocelyn Bell Burnell)였고, 어니스트 러더퍼드에게 1908년 노벨 화학상을 안긴 원자 구조 연구는 마리 퀴리 등 여러 과학자의 선행 연구에 결정적으로 의존한 거였다.
약력에서의 대칭성 붕괴, 즉 패리티 비보존 이론으로 195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중국 국적 이론물리학자 양첸닝. 그는 저 연구를 함께 수행해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리청다오와 연구 기여도 다툼 끝에 감정이 상해 평생 교류하지 않았다. 위키피디아
최근 작고한 중국 국적 이론물리학자 양첸닝(Yang Chen-Ning, 1922.10.1~2025.10.18)도 ‘패리티 비보존(Parity Nonconservation)’ 연구로 57년 동료 학자 리청다오(Lee Tsung-Dao)와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지만, 기여도를 둘러싼 갈등으로 둘은 평생 원수처럼 지냈다. 그들은 우주의 모든 물리현상은 균형과 대칭을 이루지만, 원자핵 베타붕괴에 작용하는 약력(약한 상호작용)에서는 그 대칭성이 깨진다는 56년의 혁명적 이론으로 현대 입자물리학의 패러다임을 흔든 과학자로 꼽힌다.패리티 보존-대칭성의 원리에 따르면 빅뱅 이후 우주에는 물질-반물질이 완벽히 똑같이 존재해야 했다. 반물질을 구성하는 반입자는 물질 입자와 질량 등이 똑같지만 전하가 반대여서 물질과 만나면 엄청난 양의 에너지로 변환돼 함께 소멸하게 된다. 그렇다면 현재 우주를 구성하는 수많은 물질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 의문을 해소한 게 그들의 연구였다. 그 업적, 즉 약력에서의 비대칭성은 초기 우주에서 물질이 반물질보다 미미하게나마 더 많이 생성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제기했고, 그 이론은 얼마 뒤 또 다른 과학자(우첸슝, Wu Chien-Shiung)에 의해 실험으로 입증됐다. 노벨상 공동 수상 당시 각각 35세와 31세였던 양첸닝과 리청다오의 갈등은 감정 싸움으로 번졌고, 알려진 바 둘은 평생 서로를 외면했다.
2009년 3월 방영된 CBS 인기 드라마 '빅뱅 이론'의 한 장면. 한 주연급 캐릭터가 극중 자신을 연기한 스무트(오른쪽)에게 자기 논문을 보여주며 공동 연구를 제안하자 스무트가 그 논문을 대충 훓어본 뒤 "이거 엉터리네"라며 무안을 주는, 코믹 장면이다. bigbangtheory.fandom.com/wiki/
2006년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매더는 ‘팀 전체의 공로’임을 여러 차례 강조한 반면, 스무트는 주로 자신의 연구와 발견이 지닌 가치를 부각하는 데 주력, 업적 발표 당시의 앙금을 또 한 번 환기시켰다. 매더는 자기 몫의 상금 전액을 자신이 만든 과학예술재단에 기부하며 “상금이 내 돈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 코비 프로젝트 자체가 시민들의 세금으로 나사가 추진한 공공프로젝트였고, 연구에 참여한 모두에게 공평하게 상금을 나누는 것도 사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UC버클리 교수였던 스무트도 상의 상당액을 젊은 과학자와 버클리 우주물리학센터 설립기금으로 기부했다. 그는 그 센터 초대 소장을 지냈고, 프랑스와 한국 등 여러 나라 천문학 관련 연구소 설립을 지원했고, 말년에는 노벨상 수상자로서의 대중적 인지도를 적극 활용해 과학 대중화와 청소년 과학 교육 진흥에 헌신했다.
CBS 시트콤 ‘빅뱅이론’에 두 차례 자기 역으로 출연한 것도 그런 활동 중 하나였다. 그 드라마 팬이었다는 그는 시즌 2가 방영되던 2009년 제작진에게 먼저 연락해 출연 의사를 밝혔고, 그의 파격적인 출연 이후 스티븐 호킹, 닐 디그래스 타이슨, 빌 나이, 킵 손 등 저명 과학자들이 그 대열에 합류했다. 그가 2009년 폭스TV 퀴즈쇼 ‘5학년보다 똑똑한가?’에 출연한 것도 알려진 바 자의였다. 그는 ‘아카디아(Acadia) 국립공원’의 위치를 묻는 마지막 5학년 지리문제에 짐짓 긴장하며 호주머니에서 행운의 부적인 양 노벨상 메달을 꺼내 입맞춤한 뒤 정답(메인주)을 맞춤으로써 사상 두 번째 우승자로서 상금 100만 달러를 탔다. 상금을 타면 우선 여행을 한 뒤 나머지로 라스베이거스에 자동차 윤활유 가게를 열고 싶다고 농담했지만, 알려진 바 그는 상금 대부분을 기부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손오공릴게임예시빅뱅 직후 우주는 조그맣게 응집된 고밀도 초고온 플라스마 덩어리였다. 너무 뜨거워서 수소나 헬륨조차 원자로 뭉칠 수 없고, 빛(광자)도 전하 입자들에 부딪쳐 빠져나오지 못하는 희뿌연 입자들의 우주. 약 38만 년 뒤 그 우주가 팽창하며 식어 비로소 원자들이 만들어졌고, 그제야 자유전자 등의 성글어진 틈 사이로 빛이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바다이야기디시 38만 년이 모자란 138억 년 동안 우주 전역으로 고르게 퍼져나간 태초의 빛의 잔광(마이크로파)이 '우주배경복사(CMB, Cosmic Microwave Background)'다.
약 100년 전(1927년) 벨기에 물리학자 겸 사제 조르주 르메트르가 ‘우주 팽창 가설’로 수천 년 정설이던 ‘정상우주론’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리고 2년 릴게임골드몽 뒤 미국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 우리 주변 은하들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빅뱅을 뒷받침하는 관측 증거를 내놨다. 하지만 빅뱅 우주론은 여전히 ‘가설’이었다. 그 가설은 1964년 아노 펜지아스와 로버트 윌슨이 CMB를 발견하면서 비로소 이론으로 정설화됐다. 우주의 모든 방향에서 거의 균일하게 관측된 그들의 CMB는 빅뱅의 이론적 시나리오를 완벽하게 뒷받침 뽀빠이릴게임 하는 결정적 증거였다.
과학은 스스로 구한 해답에서 늘 새로운 질문을 찾아내는 학문이다. 펜지아스 등이 관측한 것처럼 CMB가 절대온도(2.7K)와 맞먹는 동일한 온도(마이크로파 세기)로 우주 전역에 완벽하고도 균일하게 편재한다면, 어떻게 그 텅 빈 우주에서 지금의 별과 은하, 은하단이 포진한 불균일한 구조가 생겨났을까.
우주전함야마토게임 1989년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이 의회 등을 줄기차게 설득해 어렵사리 쏘아 올린 우주배경탐사선 '코비(COBE)'의 주요 임무 중 하나가 저 의문을 푸는 거였다. 과연 CMB는 조금도 주름진 곳 없이 완벽하게 균일할까. 이른바 CMB의 비등방성(Anisotropy, 온도 요동)을 찾는 거였다.
약 3년 뒤인 1992년 4월, UC버클리 물리학자 조지 스무트(George Smoot)가 미국물리학회 연단에 섰다. 그는 코비 위성에 장착한 초정밀 마이크로파 관측장비(DMR)로 CMB에서 절대온도 대비 약 10만 분의 1도 수준의 온도 차이(온도 요동)를 관측했다고 발표했다. 그 미세한 온도 차이는 초기 우주의 밀도 차이(밀도 요동)를 반영한 것으로, 거기서 비롯된 중력의 차이 덕에 별과 은하와 우주 거대구조가 형성될 수 있었다는 거였다. 우주의 ‘원초적 씨앗(Primordial Seeds)’, 즉 CMB 온도 요동을 발견한 공로로 2006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그가 최근 별세했다. 향년 80세.
2006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 코비 프로젝트 총괄 책임 과학자 존 매더(왼쪽)와 조지 스무트. 코비 프로젝트의 두 주역은 현대 우주론을 정밀 과학의 시대로 이끈 학자로 평가받는다. The Nobel Museum
스무트는 2차대전이 끝나던 해, 플로리다주 미 지질조사국 수문학자 아버지와 과학교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학부(물리학, 수학)와 대학원 과정을 이수했다. 70년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딴 그는 UC버클리에서 천체물리학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빅뱅-우주 탄생의 비밀에 천문학계의 관심이 집중되던 때였다. 동료 학자와 함께 70년대 CMB 관측장비를 개발한 그는 나사가 운용하던 U-2 고고도 정찰기로 대기권 상층부에서 전파 관측 실험을 전개했다. 하지만 CMB의 극도로 미세한 온도 차이를 정밀하게 관측하려면 수증기 등 대기 간섭이 완벽하게 차단된 공간, 즉 CMB 전파 스펙트럼으로 이론적으로 예측된 흑체복사 곡선이 구현되는 공간으로 나가야 했다. 스무트는 70년대 중반 나사에 코비 프로젝트를 제안한 소수의 과학자 중 한 명이었다.
코비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성사시킨 일등공신은 존 매더(John Mather, 1946~)다. 당시는 허블 우주망원경에 과학 예산이 집중되던 때였다. 코비 프로젝트는 1.6억 달러(당시 기준) 예산의 거대 프로젝트인 데다 당시 기술로 CMB 비등방성을 탐지할 수 있을지 불확실했고, 무엇보다 허블이 약속한 미지의 천체 사진들처럼 정치인들이 반기는 스펙터클한 볼거리가 보장된 것도 아니었다. 어렵사리 나사와 의회를 설득해 예산을 따냈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 챌린저 사고(86년)가 터졌다. 우주왕복선에 실어 보내려던 코비 위성도 별도의 델타 로켓으로 발사되도록 더 작고 가볍게 설계를 변경해야 했다. 매더는 예산을 방어하는 일에서부터 위성을 재설계하는 복잡한 과정까지 주도하며 20년 넘게 그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그는 프로젝트 총괄 책임자이자, 핵심 임무 중 하나였던 CMB 흑체 복사 스펙트럼 분석팀 책임 과학자이기도 했다. 흑체 복사란 외부의 모든 전자기 복사(빛과 열 등)를 100% 흡수해 열평형 상태에 이른 완벽하게 검은 이념형 물체, 즉 흑체(black body)가 방출하는 빛의 파장 분포로, 그는 CMB 관측을 통해 초기 우주가 흑체처럼 완벽한 열평형 상태였음을 입증하는 게 그의 팀 임무였다. 매더는 CMB의 에너지 분포 곡선이 절대온도에 해당하는 이른바 흑체 복사 스펙트럼과 오차 범위 내에서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사실, 즉 우주가 초고온 고밀도 상태에서 급격히 팽창하며 냉각됐다는 빅뱅 이론의 서사를 사실상 완결 지었다. 1990년 1월, 그가 미국천문학회에서 코비의 저 관측 결과를 발표하자 참석자 전원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는 2006년 스무트와 함께 노벨상을 공동 수상했다. 스무트가 미국물리학회에서 우주의 ‘원초적 씨앗’이라며 CMB 비등방성 발견 소식을 최초로 공개하기 직전, 그와 UC버클리 연구소는 나사의 공식 발표 절차와 엠바고(보도 통제) 합의를 무시한 채 자신과 연구소의 업적을 중점 부각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물리학회에서 행한 스무트의 발표도 꽤나 선정적이었다. “만일 당신이 종교인이라면, 신(의 얼굴)을 보게 된 셈입니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세계 언론은 그의 업적을 저 멘트와 함께 대서특필했다.
코비 프로젝트는 1,000명이 넘는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장기간 협업한 거대 프로젝트였고, 스무트가 이끈 DMR 팀만 해도 장비 개발 및 운영진을 빼고도 40여 명의 과학자와 데이터 분석가가 활약했다. 하지만 성과 발표장은 한마디로 스무트의 독무대였다. 상당수 코비 과학자는 스무트의 ‘세일즈’를 못마땅해했고, 일부는 그가 다른 과학자들의 공로까지 가로채 개인적 명성을 추구하려 한다며 반발했다. 일부 언론은 코비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였던 매더와 스무트 사이의 공명심 경쟁에서 비롯된 알력인 양 내부적 동요와 갈등 소식을 보도하기도 했다.스무트가 93년 동료 과학자와 공동 집필한 책 ‘시간의 주름: 우주 탄생의 증인’의 내용을 두고도 일부 코비 과학자들은 동의하지 않았고, 매더에게 따로 책을 쓰도록 권유했다. 매더는 3년 뒤 ‘우주 탄생의 새벽을 향한 과학적 여정: 최초의 빛의 진실된 속 이야기’라는 책을 출간했다.
17세기 아이작 뉴턴의 편지로 유명해진 '거인의 어깨 위에 선 난쟁이'란 표현을 형상화한 1410년경 독일에서 그려진 삽화. 저 표현은 과학을 비롯한 거의 모든 지적 진전의 보편적 경로를 일깨우는 상징적 비유로 정착했다. Library of Congress
‘거인의 어깨 위에 선 난쟁이’란 표현은 아이작 뉴턴이 1676년 2월 동료 과학자 로버트 훅(Robert Hooke)에게 쓴 편지 덕에 유명해졌다. 빛의 입자설을 주장하던 뉴턴은 훅의 파동설을 넌지시 무시하며 이렇게 썼다. “제가 더 멀리 볼 수 있었다면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당시 격언 혹은 관용구처럼 쓰이던 저 문구의 출전은 존 오브 솔즈베리(John of Salisbury)라는 12세기 철학자가 남긴 교육서 ‘메탈로기콘(The Metalogicon)’이라 알려져 있다. 저자는 자신의 스승인 프랑스 철학자 베르나르 드 샤르트르가 들려준 말을 책에 인용했다. “(스승이 말하길) 우리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는 난쟁이들과 같다. 우리는 그들보다 더 멀리, 그리고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지만, 그것은 우리의 시력이 뛰어나거나 우리의 키가 크기 때문이 아니라, 거인의 거대한 키가 우리를 높이 올려주었기 때문이다.” 중세 학자인 자신들이 고대 그리스 로마의 지적 유산 위에 있음을 인정하는 저 겸양의 표현은 지적 성취의 보편적 배경을 설명하는 상징적인 문구로 자리 잡았다.
물론 아무나 거인의 어깨 위에 서는 건 아니다. 그래도 동시대의 누군가는 사다리를 챙기고 자신을 무등을 내어줘야 한다. 2차대전 이후의 물리학과 천문학, 특히 이론이 아니라 실험-관측 분야처럼 대규모 인력과 막대한 예산, 거대 첨단 장비들이 필요해진 ‘빅 사이언스’의 시대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뉴턴의 시대와 달리 대표적인 소수만을 ‘천재’로 부각하는 것은 다소 편의적이고, 반지성주의적일 수 있다. 사건이나 현상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맥락을 지우고 단순 명쾌한 해답만을 특권화하는 것은 반지성주의의 주된 특징이자 강점이다. 분야별로 한 해 최대 3명에게만 수여되는 노벨상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연구 책임자 등 소수의 리더가 영광을 독점하고 수많은 과학자와 엔지니어의 실질적 기여가 무시되고 있다는 비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비단 과학계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미국 과학사회학자 로버트 머튼(Robert K. Merton)이 '마태 효과(Matthew Effect)'란 용어로 과학계의 빈익빈 부익부와 승자 독식 현상을 비판한 게 1968년이었다. 마태복음 25장의 한 구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에 빗대 그는 빅사이언스 시대의 과학적 성취가 다양한 분야의 전문화한 수많은 과학자의 협업으로 이뤄지는 반면 공로는 특정 과학자가 독식하는 관행이 이어지면서, 장기적으로 연구 다양성과 연구 환경의 불평등을 심화한다고 비판했다.과학자 개개인의 윤리적 성숙도와 별개로, 위대한 과학적 발견의 공로를 평가-분배하는 것도 오랜 딜레마 중 하나다.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 1953년 노벨상을 받은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여성 과학자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업적을 사실상 도용한 유명한 일화도 있지만, 더 앞서 제임스 채드윅(1935년 노벨상)이 32년 중성자를 발견한 것도 같은 연구소(캐번디시 연구소) 연구원들이 이룬 중요한 초기 실험 성과들 덕이었다. 힉스 입자를 발견한 공로로 피터 힉스와 프랑수아 앙글레르가 2013년 노벨 물리학상을 탔지만, 입자를 실제로 발견한 건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두 거대 실험팀 과학자들이었고, 힉스 메커니즘 관련 논문을 힉스보다 두 달 앞서 발표했던 로버트 브라우트(Robert Brout)는 2011년 숨지는 바람에 노벨상 수상 자격을 잃고 대중적으론 거의 알려지지 못했다. 빠르게 회전하는 중성자별 ‘펄서(pulsar)’를 발견한 앤서니 휴이시는 74년 노벨상을 탔지만, 실제로 그 신호를 처음 포착해 기록한 건 그의 박사과정 여성 과학자(Jocelyn Bell Burnell)였고, 어니스트 러더퍼드에게 1908년 노벨 화학상을 안긴 원자 구조 연구는 마리 퀴리 등 여러 과학자의 선행 연구에 결정적으로 의존한 거였다.
약력에서의 대칭성 붕괴, 즉 패리티 비보존 이론으로 195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중국 국적 이론물리학자 양첸닝. 그는 저 연구를 함께 수행해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리청다오와 연구 기여도 다툼 끝에 감정이 상해 평생 교류하지 않았다. 위키피디아
최근 작고한 중국 국적 이론물리학자 양첸닝(Yang Chen-Ning, 1922.10.1~2025.10.18)도 ‘패리티 비보존(Parity Nonconservation)’ 연구로 57년 동료 학자 리청다오(Lee Tsung-Dao)와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지만, 기여도를 둘러싼 갈등으로 둘은 평생 원수처럼 지냈다. 그들은 우주의 모든 물리현상은 균형과 대칭을 이루지만, 원자핵 베타붕괴에 작용하는 약력(약한 상호작용)에서는 그 대칭성이 깨진다는 56년의 혁명적 이론으로 현대 입자물리학의 패러다임을 흔든 과학자로 꼽힌다.패리티 보존-대칭성의 원리에 따르면 빅뱅 이후 우주에는 물질-반물질이 완벽히 똑같이 존재해야 했다. 반물질을 구성하는 반입자는 물질 입자와 질량 등이 똑같지만 전하가 반대여서 물질과 만나면 엄청난 양의 에너지로 변환돼 함께 소멸하게 된다. 그렇다면 현재 우주를 구성하는 수많은 물질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 의문을 해소한 게 그들의 연구였다. 그 업적, 즉 약력에서의 비대칭성은 초기 우주에서 물질이 반물질보다 미미하게나마 더 많이 생성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제기했고, 그 이론은 얼마 뒤 또 다른 과학자(우첸슝, Wu Chien-Shiung)에 의해 실험으로 입증됐다. 노벨상 공동 수상 당시 각각 35세와 31세였던 양첸닝과 리청다오의 갈등은 감정 싸움으로 번졌고, 알려진 바 둘은 평생 서로를 외면했다.
2009년 3월 방영된 CBS 인기 드라마 '빅뱅 이론'의 한 장면. 한 주연급 캐릭터가 극중 자신을 연기한 스무트(오른쪽)에게 자기 논문을 보여주며 공동 연구를 제안하자 스무트가 그 논문을 대충 훓어본 뒤 "이거 엉터리네"라며 무안을 주는, 코믹 장면이다. bigbangtheory.fandom.com/wiki/
2006년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매더는 ‘팀 전체의 공로’임을 여러 차례 강조한 반면, 스무트는 주로 자신의 연구와 발견이 지닌 가치를 부각하는 데 주력, 업적 발표 당시의 앙금을 또 한 번 환기시켰다. 매더는 자기 몫의 상금 전액을 자신이 만든 과학예술재단에 기부하며 “상금이 내 돈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 코비 프로젝트 자체가 시민들의 세금으로 나사가 추진한 공공프로젝트였고, 연구에 참여한 모두에게 공평하게 상금을 나누는 것도 사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UC버클리 교수였던 스무트도 상의 상당액을 젊은 과학자와 버클리 우주물리학센터 설립기금으로 기부했다. 그는 그 센터 초대 소장을 지냈고, 프랑스와 한국 등 여러 나라 천문학 관련 연구소 설립을 지원했고, 말년에는 노벨상 수상자로서의 대중적 인지도를 적극 활용해 과학 대중화와 청소년 과학 교육 진흥에 헌신했다.
CBS 시트콤 ‘빅뱅이론’에 두 차례 자기 역으로 출연한 것도 그런 활동 중 하나였다. 그 드라마 팬이었다는 그는 시즌 2가 방영되던 2009년 제작진에게 먼저 연락해 출연 의사를 밝혔고, 그의 파격적인 출연 이후 스티븐 호킹, 닐 디그래스 타이슨, 빌 나이, 킵 손 등 저명 과학자들이 그 대열에 합류했다. 그가 2009년 폭스TV 퀴즈쇼 ‘5학년보다 똑똑한가?’에 출연한 것도 알려진 바 자의였다. 그는 ‘아카디아(Acadia) 국립공원’의 위치를 묻는 마지막 5학년 지리문제에 짐짓 긴장하며 호주머니에서 행운의 부적인 양 노벨상 메달을 꺼내 입맞춤한 뒤 정답(메인주)을 맞춤으로써 사상 두 번째 우승자로서 상금 100만 달러를 탔다. 상금을 타면 우선 여행을 한 뒤 나머지로 라스베이거스에 자동차 윤활유 가게를 열고 싶다고 농담했지만, 알려진 바 그는 상금 대부분을 기부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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